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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기획] “그래도 내 이름은 이방인”… 네팔 국적 티베트 난민 3세의 좌충우돌 정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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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포탈라 레스토랑 작성일14-01-25 01:33 조회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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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불법체류자’였다. 1998년 겨울 네팔 국적의 티베트 난민 3세 민수(티베트명 텐징 델렉·36)씨는 미국 친척집에 가려고 경유비자로 한국에 왔다가 눌러앉았다. 지하철·삐삐·고층건물 등 네팔과는 다른 서울의 발전된 모습에 매료됐다. 낯선 땅에서 먹고살기 위해 그는 ‘이주노동자’가 됐다. 건설일용직은 물론 봉제공장, 노트공장, 미나리농장 등 일만 할 수 있다면 가리지 않았다.

양계장에서 일할 때는 닭장 옆 숙소에서 닭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고된 노동에도 민수씨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는 “네팔에서 가족과 살 때는 장남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는데 한국에선 눈치 볼 일이 없어 좋았다”고 했다.

적응도 어렵지 않았다. 음식 문화 언어 등 많은 면에서 한국과 티베트는 닮았다. 수제비 순대 삼계탕 보쌈 백김치…. 모두 네팔에서 늘 먹던 티베트 음식이다. 어순이 같은 한국어도 금세 익혔다. ‘텐징 델렉’을 발음하기 힘들었던 공장 동료들은 ‘민수’란 이름을 지어줬다. 2007년엔 한국 여성과 결혼해 영주권을 얻었다.

그러다 ‘철거민’이 됐다. 민수씨는 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음식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티베트 실상을 알리고 싶었다. 2008년 7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허름한 건물 4층에 티베트 레스토랑을 차렸다. 그동안 일하며 모은 돈을 모두 투자하고 처가 도움도 받았다.

하지만 고작 두 달 만에 건물주로부터 재개발에 따른 퇴거 통보를 받았다. 4년간의 힘든 싸움 끝에 2012년 5월 건설사와 합의하고 청계천변에 새 가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및 용역업체 직원들과 다툼을 벌여 업무방해 등 혐의로 지금까지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음에도 아직 귀화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민수씨는 “지난해 5월 귀화 면접을 통과했는데 2011년 경찰 조사 기록 때문에 국적을 못 받고 있다”면서 “나는 현재 네팔인도, 티베트인도 아니고, 한국에서 결혼해 자녀 셋을 뒀지만 한국인도 아니다”라며 웃었다.

2009년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아픈 아내 대신 출생증명서를 떼러 갔다가 거절당했다. 주민센터는 본인의 주민등록등본, 아내의 본인확인증명서와 주민등록증, 가족관계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를 요구했다. 일부는 아내가 직접 와야 뗄 수 있는 서류였다. 직원은 그가 외국인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최근 그에게 붙은 이름표는 ‘다문화’다. 지난해 가족과 함께 구청의 다문화가정 행사에 초청도 받았다. 서울 롯데월드에 갔는데 이주 가정은 주황색 스카프를 두르고 가슴에 ‘다문화’라 적힌 커다란 명찰을 달아야 했다. 민수씨는 “다문화란 말에는 분리의 뉘앙스가 있다”며 “학교에서 일곱 살 아들에게 ‘너는 다문화다’라고 얘기한다. 내 얼굴은 한국인과 다르지 않은데 다문화라는 말 때문에 아이들까지 차별받는다”고 토로했다.

불법체류자→이주노동자→철거민→다문화가정. 한국 사회에서 소외계층을 일컫는 카테고리 4가지를 모두 겪으며 16년을 살았다. 그래도 한국에 ‘정’이 많이 든 듯했다. 그는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덕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며 “불만도 많지만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언제나 개선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다들 열심히 사는 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24일 찾은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의 레스토랑 ‘포탈라’. 민수씨가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티베트 레스토랑이다. 벽에는 티베트 전통 문양을 수놓은 자수와 포탈라 궁전 그림이 붙어 있다. 이국적 정취에 끌려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종종 “요즘 티베트는 어떠냐”고 물어주기도 한다. 민수씨는 “내가 티베트인인데 티베트에 갈 수 없는 그 땅의 사정을 손님들과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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